▲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 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 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순오지의 작가 홍만종은 천명장복(天命長福-천명을 다해 오랫동안 복을 누린다.)을 위해 첫째, 양성보명(養性保命-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할 것, 둘째, 입신행기(立身行己-몸을 세우고 자기부터 행하여야 한다)할 것 셋째, 처가이물(處家理物-가정에 거처하여 사물을 잘 다스리라) 할 것, 넷째, 거관이정(居官莅政-관직에 나아가 정사의 자리를 지켜라) 할 것을 강조했다.

 

홍만종은 천수(天壽)를 누리기 위해 왜 이 네 가지에 힘쓸 것을 강조했을까? 아마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가장 가깝게는 가족관계가 있고 나와 관계하는 남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 나아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나를 바르게 경영하는 일)를 둘러싼 가족(가정을 다스리는 일)과 남(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는 것), (옛날에는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김)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관계 요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관계에서 스트레스도 받고 즐거움도 얻으며 삶의 절망을 느끼기도 하고, 삶의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중요한 문제는 나를 포함하여 그것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에 있다. 따라서 위의 네 가지를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번에는 그 세 번째로 처가이물(處家理物)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처가이물(處家理物)은 말 그대로 가정에 거처하여 사물을 잘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사물을 다스리는데 다스릴 치()’를 쓰지 않고 다스릴 이()’자를 썼을까? 이는 가정의 모든 일을 단순히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의 이치에 맞게 처리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리라. 그리고 여기서 물()은 단순한 사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홍만종은 처가이물(處家理物)에서 먼저 강조한 것이 공자의 삼계도(三計道)를 설명하면서 계획을 세워 때를 놓치지 말라고 하였다. 공자의 삼계도에 의하면,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 있고[일생지계 재어유(一生之計 在於幼)]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일년지계 재어춘(一年之計 在於春)] 하루의 계획은 그날 새벽에 있다[일일지계 재어인(一日之計 在於寅)]는 것이다. 그러기에 공자는 어려서 공부하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바가 없고[유이불학(幼而不學)이면, 노무소지(老無所知)], 봄에 밭갈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고[춘약불경(春若不耕)하면 추무소망(秋無所望)]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힘써 해야 할 바가 없어진다[인약불기(寅若不起), 일무소판(日無所辦)]고 하였다.(명심보감 입교편에도 나옴) 그러기에 어진 농사꾼은 장마지고 가문다고 농사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큰 목수는 못난 공장이들을 위해 먹줄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것저것 탓하지 말고 부지런히 계획하여 자기의 본분을 다하라는 말이 된다.

 

둘째, 음덕을 쌓아 두어야 자손에게 전할 것을 강조한다. “금덩이를 쌓아 두었다가 자손에게 물려준다고 해도 자손이 그것을 지킨다고 기약할 수 없으며, 서적을 쌓아 두었다가 자손에게 물려주어도 자손이 그것을 다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만약 이를 잘못하면 자손들끼리 분란이 일어나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음덕을 쌓아 자손들이 긍지를 가지고 장구한 계획을 세우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제일이다.” 오늘날도 부모의 재산으로 인해 형제간에 갈등과 다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는 부모들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셋째, 자식을 가르쳐야 한다.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이 경서 한 질을 가르치는 것만 못하고, 자기 몸을 봉양하는 데는 백 가지로 계산해 보아도 한가지의 예술을 익히는 것만도 못하다. 가장 즐거운 낙은 글을 읽는 것만 한 것이 없고 가장 중요한 요령은 자식을 가르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일이 아무리 적어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아들이 아무리 어질다 해도 가르치지 않으면 그 아이가 현명하게 될 수 없다. 따라서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집에 이응을 이지 않는 것과 같다. 집에 이응을 잇지 않으면 세월이 흐른 후 집에 빗물이 새어들어 폐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자식을 가르치지 않으면 뒷날 큰 우환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이 우선이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것은 삶에 대한 도리와 세상에 대한 이치와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우선한다. 그것은 마음의 정화와 실천교육이다. 지식교육은 다음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날 부모들은 지식교육에 우선하며,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자식에게 재물을 물려주려고 애를 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성공시키려 한다. 이는 오히려 자식을 망치는 길인데도 말이다.

 

넷째, 인의(仁義)로 가정을 다스려라. 호거인(胡居仁: 중국 명나라 초기의 주자학자(1434~1484). 자는 숙심(叔心). 호는 경재(敬齋). 오강재(吳康齋)의 문하에 들어가 정주학을 배우고, 진헌장(陳獻章) 등의 심학(心學)을 배격하였다. 저서에 거업록(居業錄), 호경재집(胡敬齋集)따위가 있다.)집이 몹시 가난하여 다 떨어진 옷을 입고 표주박 밥을 먹었지만 늘 태연한 모습을 잃지 않고 어진 것과 의리는 몸을 윤택하게 하고, 시렁에 가득 찬 서적은 집을 윤택하게 하니 이만하면 족하지 않은가?’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가난하더라도 인의(仁義)를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인의를 버리는 사람은 지금도 많으며, 인의를 버린 결과는 더욱 비참해진다. 부자라고 사치한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

 

다섯째, 횡재와 부당한 이익을 구하지 마라. 소동파(蘇東坡 10361101 중국, ()나라의 대 문장가 당송 8 대가의 한 사람,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대를 이어 문장에 뛰어나 '3'(三蘇)라고 일컬어진다)이유 없이 천금을 얻으면, 큰 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큰 화가 온다‘”고 했다. 그러니 횡재를 구하려 애쓰지 말며, 부당한 이익을 구하려 안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쩌다가 횡재를 얻으면 자기를 절제하지 못하고 욕망을 앞세워 교만해지고 방탕하기 쉽다. 그러면 횡재를 얻기 이전보다 더 비참해진다. 여러 조사에 의하면, 로또 복권에 당첨된 상당수의 사람이 로또 당첨 이전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횡재와 부당한 이익은 사람을 타락의 길로 이끄는 마귀일 수 있다.

 

한비자(韓非子)에 한 부부가 하늘에 소원을 빌고 있었다. 처음에는 천 냥을 내려 달라고 기도를 하다가 나중에 만 냥을 달라고 기도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 남편은 계속 만 냥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아내가 갑자기 일천 냥만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임자는 왜 만 냥이 아니라 천 냥만 달라고 하는 거요하고 아내에게 따져 물었다. 이에 아내가 말했다. “우리는 천 냥만 있어도 족하게 살 수 있어요. 그러나 만 냥이 생기면 재물이 많아 당신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고, 돈이 많으니 주막을 드나들 것이며, 첩을 얻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지금의 행복이 모두 깨어질 것이란 말이오. 그래서 나는 천 냥만 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이라오”. 재물로 인해 행복이 깨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말사면 종두고 싶어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인간의 욕망은 채울수록 더욱 커지며, 갈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섯째, 절용(節用)에 힘써라. “절약하여 쓰지 않으면 아무리 재물이 많다고 해도 반드시 바닥이 날 것이다. 따라서 능히 절용하고 나면 아무리 주머니가 비었다 해도 반드시 가득 차오를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소비 지향의 사회가 되어 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라도 마구 돈을 쓰면 나라의 곳간도 텅 빌 수 있다. 나라의 곳간은 국민의 세금이니 위정자들은 깊이 헤아려 절용하여야 하는데 국민이고 위정자고 퍼 주는 것을 미덕(美德)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걱정이기도 하다. 물론 적절한 소비는 미덕이 된다. 경제의 순환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절용이라고 하는 것은 돈을 무조건 아끼라는 것이 아니라 쓸 때는 꼭 써야 할 곳인가를 면밀하게 따져 써야 하며 이치에 맞게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곱째, 가교(家敎)에 힘써라. “자식을 가르칠 때는 어릴 때부터 해야 하고 며느리를 가르칠 때는 처음 데려 올 때부터 해야 한다.” 여기서 자식과 며느리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는 것이다. 이미 다른 습관과 생활로 굳어진 상태에서는 다시 가르치기란 어렵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오늘날은 상당수가 방치의 상태이며 특히 며느리 교육은 아예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식이든 며느리든 함께 존중하며 조화롭게 지내는 방법을 찾는 일이리라. 그래도 가정 교육은 늘 모든 교육의 중심에 있음은 두말할 것이 없다. 오늘날 많은 사회 문제가 가정 교육의 붕괴에서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여덟째, 집안의 규율을 바로 세워라. “만약 사랑에 빠진 자(바람을 피우는 자)는 아내에게 굽신거리게 되어 있고, 재물을 잃을까 걱정하는 자는 부자에게 아첨하게 되어 있다. 어머니가 사랑만 가득하고 위엄이 없으면 자식에게 무엇을 시킬 수 없게 된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식과 도량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으니 지식과 도량을 키워라. 멀리 있는 물로 가까운 불을 끌 수 없고, 멀리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니 이웃과 잘 지내라. 책을 저술하는 것은 젊었을 때 해서는 안 되며, 일을 처리할 때에는 쓸데없는 일이 개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출세하는 데에 남에게 아부하지 말아야 하며, 가정에 거처할 때에 호사(豪奢 -호화롭고 사치함)하지 말아야 한다.”

 

위에서 왜 책을 저술하는 것은 젊었을 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을까? 오늘날은 젊어서부터 책을 저술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데 말이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첫째는 젊어서 책을 저술하여 이름이 알려지면 교만하게 되기 쉽기 때문이며, 둘째는 젊어서 저술하는 책은 무르익은 지식과 깨달음이 어설픈 것을 기록해 놓아 뒷날 오욕이 될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출세하는데 남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청탁금지법까지 만들어지고 있으니 어찌할까?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건 남에게 아부(청탁)하여 출세하는 자가 많으면 그 사회는 부패한 사회이고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오늘날 가정에서 사치한 사람이 또한 얼마나 많은가?

 

아홉째, 순리를 따라야 한다. “배가 고프면 추한 음식도 먹어야 하고, 객지에 있으면 종의 말을 믿어야 한다. 병에 걸리면 약을 믿어야 하고, 늙어서는 글을 믿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교만이 자라 길을 잃고 자신을 해치게 된다. 순리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쓸데없는 권위와 자존심, 교만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상황에 따라 누구에게나 베울 수 있으며 누구든 믿고 따르므로 위기를 면할 수 있다.

 

열 번째, 특히 자신의 중심을 지켜라. “산골에 사는 것이 좋은 일이라 하지만 조금이라도 영화를 누릴 생각이 든다면 시조(市朝-저작거리 장사치)와 다를 바 없다. 서화(書畫)를 구경하는 것이 기묘한 일이라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것을 탐내는 마음이 있으면 이 또한 장사치와 같다.” 이는 오늘날로 보면 전혀 맞지 않는 말인 듯하나 그 내면을 보면 아마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일 것이리라.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것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느끼고 깨달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자본 만능의 시대에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만 계산하려 한다. 술을 마시는 것이 즐거운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남의 잘못된 짓을 따라 하면 지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손님을 좋아하여 잘 대접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속된 자에게 끌려가게 되면 고해(苦海-고통이 끝이 없는 세상)에 빠지는 것과 같다.” 그러니 반드시 삶의 중심을 지켜야 한다.

 

위에서 정리한 열 가지는 오늘날 맞는 것도 있지만 맞지 않은 것도 있다. 어떤 이는 홍만종이 할 일이 없으니 쓸데없는 것들을 기록하였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이 새겨보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가정은 나와 관계한 가장 최초의 집단이며 최후의 집단이다. 그리고 가정 구성원들은 나와 관계한 최초의 사람들이며 최후의 사람들이다. 삶의 모든 출발은 바로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기에 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은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며, 삶을 스트레스로부터 해방하고 행복으로 이끄는 열쇠이다. 그리고 위기에서 나를 지켜주고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보루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요즈음 텔레비전이나 유명인사의 특강 등에서 많은 사람이 무엇보다 나를 위해 투자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를 곡해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위해 투자하기 위해 가정에 소흘한 사람도 생겨나고, 이혼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그것이 과연 나를 위한 투자일까? 그렇게 하면 정말 스트레스를 잊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가정과 조화를 이루며 충실할 때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려면 가정을 꾸리고 가정에서의 역할에 충실하여 가정을 잘 관리하며 그 안에서 자기를 잘 다스리고 자기를 위해 함께 투자할 때 더 복된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런 삶이 나를 위한 영원한 투자가 아닐까? 나를 위해 투자한다는 것이 좋은 옷을 사 입고 마음대로 즐기고 세상에 나아가 마음대로 일하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나를 위한 투자는 건강한 가정을 이루며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있지 않을까? 그래야 스트레스가 없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정말 천명(天命)을 다하여 살 수 있지 않을까? 유명했던 스티브 잡스가 50대 나이에 죽으면서 남긴 말이 귀에 쟁쟁하다. “이웃을 사랑하라, 가정에 충실하라, 나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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