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 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 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은 무엇보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로 직무에 임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인지라 사()에 집중하기가 쉽다. 특히 힘들고 지칠 때 공무를 제쳐두고 몸을 쉬고 가사를 돌아보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특히 공과 사가 충돌되었을 때 사에 빠질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특히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을 때 자기 몸과 집안을 돌보지 않고 공무에 충실한 사람을 칭송한다. 또 자기를 희생하여 의를 행한 자들을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 하며 크게 우러러 받든다.

 

모든 인간사에는 늘 재난이 있다. 국가는 그 재난에 잘 대처하여 국민이 피해가 없도록 하여야 하며 혹 국민이 피해를 당했을 때 구제를 신속하게 하여야 한다. 재난은 전쟁이나 기근, 무질서와 부주의에 의한 인재도 있지만, 자연 재난도 엄청나다. 자연 재난은 태풍, 홍수, 폭설, 가뭄, 등 다양하다.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왕은 쫓겨나는 경우가 있었으며 현대에도 그런 지도자는 쫓겨나는 경우가 많다.

 

고대부터 이어온 전통 농경사회에서 큰 재난 중 하나는 가뭄과 홍수였다. 가뭄과 홍수가 닥치면 농사는 지을 수 없으며 농사를 짓지 못하면 백성은 살 수가 없다. 나아가 나라의 재정이 바닥이 나서 정권을 지탱할 수 없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책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현명한 군주는 치수(治水)에 집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치수 사업은 근대화 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지금도 중요하게 진행되어 오고 있다. 지금의 치수 사업은 단순히 홍수 피해를 줄이고 농사에 필요한 물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모든 산업의 근간을 이룬다.

 

전설의 시대라 일컫는 고대 중국에서 치수 사업에 달인이 있었다. 성군(聖君)이라 일컫는 요임금 때 큰 홍수가 났다. 이 큰 재난에 백성들은 살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요임금은 대대적인 치수 사업을 벌였다. 치수야말로 나라를 지탱하고 백성을 살리는 최선의 길이었다. 요임금은 치수에 능한 자를 추천하도록 하였다. 그때 곤이란 사람이 추천되었다. 곤은 등용되어 치수 사업을 주관하였으나 9년 동안이나 계속된 홍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요임금이 나이가 들며 후계자가 필요했다. 요임금은 자기 아들이 있었으나 불초(不肖-인품과 능력이 부족함)라 하여 능력이 있는 순을 후계자로 삼았다. 요임금이 승하하고 순이 즉위하였다. 순은 임금이 되자 선왕 때부터 해 오던 치수 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때 선왕 때부터 치수 사업에 실패를 거듭했던 곤의 아들인 우()를 등용하려 했다. 우는 그 직을 설(), 후직(后稷), 고요(皐陶)에게 양보하며 극구 사양했으나 순임금은 끝내 우를 등용하고 익(), (后稷) 등이 우를 돕게 하였다.

 

우는 임금의 명을 받고 치수 사업의 총책이 되어 익(), (后稷) 등과 함께 제후들과 백관들에게 인부들을 동원하여 치수 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산으로 직접 올라가 말뚝을 세워 위치를 표시하고, 높은 산과 강을 측정하는 것부터 하였다. 우는 부친인 곤이 치수 사업에 실패하여 처벌받았던 것(곤은 치수에 실패하여 순에 의해 우산 지방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죽음)을 슬퍼하였으나, 아버지의 실패를 곱씹으며 치수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우가 치수 사업에 몰입한 기간은 13년이나 되었다. 우는 밤낮으로 친 이슬을 맞으며 일을 했다. 그는 입고 먹는 것을 절약하여 효를 다하였으며, 누추한 집에 살면서도 가옥을 검소하게 하고 재정을 극도로 절약하여 치수 사업에 보탰다. 이를테면 재정을 사비(私費)로 충당한 것이었다. 그는 왼손에는 수준기(水準器-수평을 재는 도구)와 먹줄을 들고, 오른손에는 그림쇠와 곡자(둥근원을 그리는 도구-각도기의 일종)를 들었다. 사계절을 측량하는 도구를 가지고 동분서주(東奔西走)하였다. 밭과 도랑 사이에 물줄기를 내어 바로 잡았으며 전국을 개척하고 도로를 내었다. 연못에는 제방을 쌓아 물이 넘치지 않도록 하였으며, 필요한 곳에는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어 홍수를 막고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그는 전국의 아홉 개의 산을 개간하고, 아홉 개의 호수를 통하게 하였으며, 아홉 개의 강줄기를 통하게 하여 구주(九州-기주, 연주, 청주, 서주, 양주楊州, 형주, 예주, 양주梁州, 옹주 등)를 확정 지었다. 우는 그렇게 치수에 몰입하는 동안 자기 집 대문 앞을 지날 때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과문불입過門不入)

 

순은 재위에 오른지 39년 만에 창오의 들판을 순행하다가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자기의 선왕 요가 그랬듯이 아들이 불초인 것을 알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다방면으로 능력과 덕성을 검증한 우를 후계로 임명했다. 그렇게 해서 우는 순처럼 왕위에 올라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여기서 과문불입(過門不入)을 다시 생각해 보자. 한편으로는 집안 가솔(家率)이나 주변 사람들이 생각할 때 우를 매우 매정한 사람이라 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급한 공무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집 앞을 지나다 집에 들르면 쉬고 싶기도 하고 집안에 살필 일들이 산적하게 쌓인 것을 보게 되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일에 지친 모습을 보면 가족들은 그에 잠시라도 쉴 것을 권고할 수 있다. 그러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공무의 시급함을 잊을 수 있다. 그래서 우는 집 앞을 지날 때에도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과문불입(過門不入)은 시급한 공무를 책임진 자의 책임감을 강조한 말이다.

 

며칠 전 태풍 힌남노가 제주도를 비롯한 한반도 전역을 덮쳤다. 특히 제주와 부산 포항을 비롯한 남해안에 들이닥친 태풍의 위력은 참으로 다단했다. 피해도 엄청났다. 그러나 그 피해는 예전보다는 적었던 모양이다. 사전 대비가 어느 때보다 철저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을 비롯한 전국의 지방 자치단체의 장까지 잠을 자지 않고 현장을 진두지휘하여 피해를 줄였다는 평가가 크다. 물 폭탄을 맞은 포항의 아파트 현장에서 대통령은 몸소 그 안에 들어가 실종된 사람을 구할 것을 진두지휘했으며 곧바로 특별 재난 구역으로 선포했다. 전국의 태풍 피해 파악과 복구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며칠간을 집무실에서 지내다시피 하였다고 한다. 태풍 힌남노의 대처 과정에서 보인 대통령과 불철주야 현장을 지휘했던 지방 자치단체장들의 행적도 과문불입(過門不入)의 한 류형에 속하지 않을까?

 

2014416일 세월호 사고 때 늘 문제가 되었던 일이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이라고 말한다. 배가 침몰 되어가고 아이들이 바다에 수장되는 와중에도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가의 문제는 세상을 달궜고 국민을 분노하게 하였으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출발점이 되었다. 최고 통치자의 재난에 임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는 역사적 사례가 되었다.

 

지난 대선 때 어느 후보가 재난 상황에서도 지인하고 식사를 하였다고 문제를 삼았다. 당사자는 이미 모든 상황을 보고 받고 지휘한 후라고 말했지만, 우 임금이 치수를 할 때 몸소 산에 올라가 살피고 측정하며 진두지휘했듯이 현장에 찾아가 살피고 대처하였느냐 아니었느냐의 문제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일 때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영국 총리는 2020520일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열린 술 파티에 참석했고 416일에는 총리실 직원들이 충리실에서 두 차례나 시끌벅적한 파티를 벌인 것이 밝혀져 분노를 일으켰고 유사한 일들이 겹쳐 결국 사임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보리스 존슨의 파티게이트라고도 부른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된 핀란드의 산나 마린(Sanna Marin) 총리가 가수, 방송인 등 유명인사들과 여당 의원 등 약 20명과 함께 한 가정집에 모여 격정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는데 영상이 발표되자 마약인 코카인을 사용했다는 의혹까지 겹치면서 나라 안과 밖이 들끓었다. 그녀는 단지 술을 마시고 놀았을 뿐 마약 복용을 하지 않았고 관련해서 본 것도 없다. 이는 완벽히 합법적인 일이라며 또래들이 그러듯이 친구들과 여가 시간을 즐긴 것 뿐이고 총리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하며, 이것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그녀의 총리로서의 도덕성과 자질에 엄청나게 금이 가고 신뢰가 떨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모든 지도자는 공인(公人)이지만 사인(私人)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적인 생활과 사적인 즐김도 필요하다. 물론 그들도 인간인지라 사생활을 즐길 권리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와 연결되면 평가가 달라진다. 국민이 문제 삼는 것은 바로 그런 점들이다. 재난이 닥쳐 국민은 고통 속에 허덕이는데 그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거나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심지어는 나 몰라라 한다면 이는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신속하지 않고 자기의 할 일을 다하고 난 후 나타나 어물쩡하게 대처한다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지도자로서의 직무유기이며 탄핵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지도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모든 일의 우선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물가는 오르고 민생경제는 수렁에 빠지고 있다. 추석이 다가온다. 많은 정치인이 민생을 살핀다면 현장을 찾기도 할 것이다. 그런 경우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진심이길 바라며 몸으로 대처하였으면 좋겠다. 특히 이 어려운 기간에도 기득권 확보를 위한 정쟁에 몰입한다면 국민은 그들을 외면할 것이다. 이 시점에 정치인과 단체장 등 지도자들이 그 옛날 우임금이 취했던 과문불입(過門不入)의 고사를 가슴에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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