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舟庶水(군주서수) : 군(임금 군), 舟(배 주), 庶(여럿 서) 수(물 수)

순자(荀子 BC 300경~230경, 중국 조趙나라 사람)가 쓴 순자(荀子) 제9절 왕제에 나오는 말이다. 군주는 배와 같고 서인(백성)은 물과 같다. 배는 물이 없으면 띄울 수 없듯이 군주는 백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엎기도 한다(水則載舟, 水則覆舟). 따라서 군주는 항상 백성을 기반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모든 위정자는 배와 같고 국민은 물과 같다. 국민 없는 위정자는 있을 수 없으며, 국민은 위정자를 뒤엎기도 한다. 따라서 위정자는 항상 국민의 삶과 바램을 살펴야 한다.

▲이상호 전) 천안아산경실련 대표 /소소감 리더십 연구소 소장
▲이상호 전) 천안아산경실련 대표 /소소감 리더십 연구소 소장

1. 선거의 계절에

군주정치 시대의 백성은 난폭한 군주가 나타나도 마음대로 바꾸기 어려웠다. 핍박받고 시달리다가 민란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쉽지 않았다. 동서의 역사를 막론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난폭한 군주는 백성의 고혈을 짜다가 역성혁명이란 이름으로 권좌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그때 군주를 교체하거나 왕조가 무너지고 새 왕조가 들어서기도 하였다. 이때도 백성들은 능동적인 역할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유는 일반 백성들은 현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신분과 계급사회라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능동적인 역할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구의 역사에서 보듯이 시민계급이 성장하고 교육의 기회가 확대됨에 따라 백성들은 권리를 주장하고 추구하게 되었으며 봉기하여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난폭한 군주에 대항하여 그들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근대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 혁명이었다.

 

고려, 조선 등 한반도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후기의 정치는 그 질곡이 엄청났는데도 백성들은 군주를 갈아치울 수 없었다. 그러나 해방 후 민주주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부정하고 불의한 정권에 항거할 줄 알았다. 그리고 국민이 원하는 정부를 세우기 위하여 피를 흘리며 노력하였다. 3.15 부정선거에 대항한 4. 19혁명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 이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룩한 민주화 시대에 국민은 국민이 원하는 정부와 지도자를 선택하고 세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민주주의 시대의 국민은 부정하고 무능한 정부를 국민의 이름으로 바꾸고 새로운 정부와 지도자를 세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해졌는가? 첫째,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이념의 정립과 민주정치라는 정치 형태를 바로 세웠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국민의 교육 수준이 향상되고 삶의 형태가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자유와 평등이 올곧은 정치 이념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확대되는 만큼 국민의 교육과 지적 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급속도로 팽창된 교육의 혜택에 따라 국민의 민주 의식이 발달하였고 빠른 경제성장으로 시민의식과 자유와 평등 의식이 확대되었다. 그 결과 우린 민주주의의 정착과 함께 비로소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국가가 갖는 중요한 특징이 선거를 통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물론 정치인들을 국민이 직접 뽑아 세우는 데 있다. 따라서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이요 꽃이다. 민주국가의 국민은 선거를 통해 최고 통치자를 비롯한 모든 주요 정치인을 뽑아 세우고 바꾸고 물러나게도 한다. 그래서 민주정치는 선거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정치를 택한 국가의 국민이 올바른 선거 정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현명해져야 한다. 국민이 현명해진다는 것은 정치인들의 당리당략이나 흑색선전 등에 함몰되지 않고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이 있을 때 가능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무능한 정부와 교활한 위정자들을 선택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거기에는 국민이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1934년 히틀러는 괴벨스를 앞세운 기막힌 선전 선동 정치를 통해 독일 국민의 90% 이상의 지지를 얻어 총통의 지위에 올랐다. 그것은 다가올 독일 국민의 비극을 예고하는 것이었으나 당시 독일 국민은 그것을 모르고 오로지 히틀러에 맹종하고 있었다. 결과는 엄청난 독일 국민의 희생과 2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독일의 분단을 가져왔다. 그리고 유대인을 포함한 인류에게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다. 그것은 히틀러의 죄악만이 아나라 히틀러가 그렇게 하도록 따라 주고 지지해 주었던 독일 국민의 몫이기도 했다. 이성적 사고를 중시한다고 알려진 독일 국민은 전혀 이성적이지 못했다. 이런 사례는 선거를 통한 국민의 선택이 이성적이지 못했을 때 국민은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민주국가에서 물()인 국민이 지도자인 배()를 바꾸고 뒤엎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며 신성한 수단은 선거이다. 이때 국민은 현명하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만약 국민이 현명하고 이성적이지 못하면 히틀러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 그가 오만하도록 하였던 독일 국민처럼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된다. 그런데 민주국가의 국민 상당수는 자기들의 잘못된 선택을 탓하기보다는 지도자와 시국만 탓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4.10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상한 선거법으로 온갖 위성정당이 난무하고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흠결이 넘치는 사람들이 후보자로 뛰어들어 자기의 지지를 선전하고 있다. 여기에 상당수의 사람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린 정말 선거를 통한 선택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 선택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이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 선택을 하여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성능 좋고 현명한 지도자인 배를 선택하는 것은 그 선택권을 가진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른 지도자인 배()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그 선택권을 가진 물()인 국민이 맑아야 하고 현명하여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은 물()이며 지도자(군주)는 배()이기 때문이다.

 

2. 순자(荀子)가 말하는 君舟庶水(군주서수)

 

순자는 군주는 배()이고 서인은 물()이다. 따라서 수즉재주(水則載舟-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수즉복주(水則覆舟-물은 배를 뒤엎기도 한다.”(荀子 9장 왕제 4)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순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말이 놀라면 군자는 수레에서 안정될 수 없고 서인(庶人-백성)이 정사에 놀라면 군자는 자리에서 안정될 수 없다. 말이 놀라면 이를 안정시키는 것보다 나은 게 없고, 서인(백성)이 놀라면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 현량(賢良-경학에 밝고 덕행이 뛰어난 선비)을 정선해 쓰고, 독경(篤敬)을 거용해 효제(孝弟)를 흥기 시키고, 고과(孤寡-고아와 과부)를 거두고, 빈궁(貧窮 -가난해서 생활이 어려운 자)를 원조한다. 이리하면 서인이 정사에 안정될 것이다. 서인이 정사에 안정된 후에 군자 또한 자리에 안정될 수 있다.

 

그래서 군인(君人-군주)이 안정되고자 하면 평정애민(平政愛民-정사를 공평하게 하면서 백성을 사랑함) 보다 나은 게 없고, 영예(榮譽)롭고자 하면 융례경사(隆禮敬士-예를 높이고 선비를 공경함)보다 나은 게 없고, 공명을 세우고자 하면 상현사능(尙賢使能-현자를 숭상하고 재능있는 자를 두루 씀) 보다 나은 게 없다. 이는 군주의 대절(大節 - 큰 원칙) 이다. 3(三節)이 합당하면 부당한 게 없다. 그러나 이 3절이 부당하면 그 나머지가 비록 곡당(曲當-모두 지극히 합당함) 할지라도 아무 이익이 되지 못한다.

 

순자가 말하는 정치의 대절(大節 - 큰 원칙)인 평정애민(平政愛民), 융례경사(隆禮敬士), 상현사능(尙賢使能)은 공정과 민생이 첫째요, 스스로 도덕적 흠결이 없어야 하며 예의를 숭상하는 일이 둘째요, 올바른 인재를 등용하여 쓰는 일이 셋째다. 이는 오늘날에도 지극히 통하는 기본 원칙이 된다.

 

김삿갓이 방랑 생활을 하는 중에 함흥지방에서 함흥 부윤 홍치준(洪致俊)을 만났다. 홍치준이 김삿갓에게 다섯이나 되는 자기 아이 훈장이 되어 달라고 사정하는 자리에서 정사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특히 순자가 말한 평정애민(平政愛民)의 길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제 김삿갓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관리에게 평정애민(平政愛民)의 세 가지 길이 있는데 첫째는 나라의 재물을 훔치지 말 것, 둘째는 백성들의 재물을 수탈하지 말 것, 셋째는 매사에 공()과 사()를 엄격히 하여 모든 공사를 공평무사하게 처리할 것을 등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면 백성들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에서 강조하는 바로 살펴보면, 나라의 재물을 훔치는 일은 공금을 직접 횡령하는 일, 세금을 함부로 쓰는 일, 공금을 사적으로 쓰는 일, 일을 방만하게 하여 국고를 낭비하는 일 등 모두가 해당된다.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지 말 것에는 배성을 직접 수탈하고 뇌물을 받는 일뿐 아니라 국고를 함부로 사용하여 낭비하는 일도 해당된다. 국고는 백성이 낸 세금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이용하여 인사 청탁을 하거나 법인 카드를 함부로 쓰는 일 또한 이에 해당한다. 다산은 평정애민(平政愛民)의 핵심으로 청렴과 절용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지도자로 나선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이 너무도 많다. 공정과 상식에서 벗어난 자를 공천하는가 하면, 막말과 국가의 근본을 무시하는 자가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자가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서는데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도 있다. 국가관과 지향과 비전이 무엇인지 근본부터 혼돈되는 자를 공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찌된 일인가? 인간은 정치와 권력, 돈에 연관되면 이성적 동물이 아닌 것 같다.

 

 

3. 君舟庶水(군주서수) -올바른 지도자를 세우기 위한 국민의 역할

 

앞에서 순자가 말했듯이 지도자는 배()이고 국민은 물()이다. 물에는 올바른 배가 떠서 잘 운행되어야 한다. 만약 배가 올바르지 못하고 오염되면 물도 오염된다. 물이 그 오염을 방지하고 계속하여 깨끗하고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배를 잘 띄워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올바른 지도자를 세우는 일은 순전히 국민의 몫이다. 국민은 선거라는 방식을 통해 지도자를 세운다. 그리고 그 지도자란 배를 국민 위에 띄운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역할이다.

 

첫째, 정직하고 믿음성이 있는 자를 우리의 배로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지도자가 되려는 자가 지금까지 한 말과 행동의 일관성 여부를 통해 알 수 있다. 과거의 말과 현재의 말이 일관성이 있는가? 과거의 자기의 말에 책임을 지고 있는가? 그런데 우린 지금 말을 수없이 바꾸고 그 말대로 실천하지 않은 사람을 우리의 배로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둘째, 나라의 돈을 함부로 쓰려는 자를 경계하여야 한다. 나라의 돈은 국민이 낸 세금이다. 물론 민생은 아주 중요하다. 민생이 중요하다고 하여 국민에게 무상으로 돈을 주려는 것은 옳지 못하며 공평하지도 않다. 전 국민에게 일정액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이다. 따라서 현금 살포성 정책은 분명 표퓰리즘에 해당하는 선심성 정책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의 창출을 통한 생활 안정이다.

 

셋째, 도덕적 흠결이 있는 자를 경계하여야 한다. 특히 막말과 성 비위 문제, 음주운전 등의 경력이 있는 자들,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거나 그 경력이 있는 자들, 예의를 저버린 오만한 자들 이런 자들을 우리의 배로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자들은 융례경사(隆禮敬士)에 지극히 어긋난 자들이기 때문이다.

 

넷째, 말 잘하는 자들보다 말에 신뢰가 있는 자를 택해야 한다. 공자도 말을 청산유수같이 하는 자는 진실성이 떨어지는 자가 많다.’고 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교언영색(巧言令色) 하기 쉽고 그 교언영색(巧言令色) 하는 자에게는 인()이 없다. 오로지 임기응변과 술책만 난무할 뿐이다. 1930년대 독일 국민은 말 잘하는 히틀러와 괴벨스의 임기응변과 술책에 넘어갔다. 그리고 독일 국민은 그 댓가를 톡톡하게 치렀다.

 

다섯째, 후보자의 국가관과 가치관을 살펴야 한다. 국가관은 국가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다. 후보자의 국가관이 지금 대한민국의 헌법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체계에 부합하는가를 따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감정적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잘못된 선택을 하면 그 후유증은 국민이 짊어져야 할 몫일 것이다.

 

여섯째, 지금 후보자들은 엄청난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정치에서 공약(公約)은 공약(公約)이기도 하지만 공약(空約)이기도 하다. 사실 그들이 내세우는 공약(公約)의 상당수는 공약(空約)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무리한 공약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지금 후보자들이 내 세운 공약을 다 실현하려고 하면 나라의 제정은 바닥이 날 것이다. 따라서 그런 공약에 현혹되지 말고 냉정해 져야 한다.

 

일곱째, 무엇보다도 그가 가진 정치적 지향성과 정치 개혁의 의지다. 그가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그의 정치적 신념과 투지를 살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변자가 되어야지 여의도의 대변자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린 제21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서 그들이 국민의 대변자가 아니라 여의도의 대변인 역할을 얼마나 많이 하여 왔는지를 보았다. 여의도 대변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한 정당은 오만한 정당이다. 여의도의 대변자들이었기에 방탄 국회를 만들고 밥그릇 채우기에 바빴던 것 아닌가?

 

확실한 것은 우리가 띄울 배를 선택하는 다가오는 4.10 총선을 앞두고 국민은 더욱 현명해져야 한다. 우리 국민은 과거 그런 현명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 현명함이 발휘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국민 상당수의 정치 지향이 1930년대 독일 국민의 정치 지향과 비슷한 것 같다.

 

순자가 말한 것을 다시 거론하면 국민은 물()이고 위정자들은 국민이 띄우는 배()이다. 물은 더욱 맑아져야 하고 깨끗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국가에서의 지도자인 배()고 맑고 깨끗해질 수 있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 감정이나 확증편향을 버리고 이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순자가 말한 君舟庶水(군주서수)를 생각하며 4.10 총선에서의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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