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현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변종현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는 아산에서 유배생활중 역병을 피해 네 번이나 이사를 하였고, 학질에 걸려 투병한 내용을 장편시로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旣被榮衛拘(기피영위구)

영기 위기 구속되어 막혀있으니
何處逃此身(하처도차신)

어떻하면 이 내 몸을 지켜내겠나?
必至有前期(필지유전기)

반드시 앞날 기대 있겠지마는
進退無淹辰(진퇴무엄신)

좋아졌다 나빠졌다 멈추질 않네

忍痛待今日(인통대금일)

고통 참고 오늘까지 기다렸으니
甘受萬苦辛(감수만고신)

온갖 고통 쓴맛까지 감수해야지
增寒始陵虐(증한시릉학)

한기 더해 처음에는 괴롭더니만
氷雪生衣巾(빙설생의건)

얼음과 눈 옷 속에다 넣어 놓은 듯
未定齒牙戰(미정치아전)

치아들도 덜덜 떨려 안정 안 되고
熾火又焦脣(치화우초순)

열이 심해 또 다시 입술 바짝 타
孰謂片晌內(숙위편상내)

그 누가 일렀던가 잠깐 사이에
二氣酷相因(이기혹상인)

오한 고열 혹독하게 이어질 줄을
飛昇九天上(비승구천상)

구천 하늘 비상하여 날아올랐다
忽下千丈淪(홀하천장륜)

홀연 듯이 천길 아래 빠져드는 듯
毛根及骨際(모근급골제)

털 뿌리와 뼈 마디 속속 미쳐서
搜剔靡不臻(수척미부진)

뼈 바르듯 아프지 않는 곳 없어
血源與髓海(혈원여수해)

피의 원천 골수 바다 거기까지도
熬煎涸其津(오전학기진)

끓어올라 심장까지 말라버릴 듯
百節解關紐(백절해관뉴)

관절 마디 모든 것이 다 풀어진 듯
七鑿瞀性眞(칠착무성진)

일곱 구멍 본성마저 흐트러지고
昏昏逮曛暝(혼혼체훈명)

혼미함이 저녁까지 미치게 되어
餘烈仍徹晨(여렬잉철신)

남은 열기 새벽까지 이어지는데
衰老益煩促(쇠로익번촉)

나이 드니 괴로움이 더욱 심하나
敢辭死爲隣(감사사위린)

죽을 경지 가까이는 사양하고파
但於叫呼頃(단어규호경)

다만 아야 끙끙 앓는 잠깐 사이도
崩迫凋精神(붕박조정신)

정신마저 가물가물 무너져내려
陰陽寧暴人(음양녕폭인)

음과 양이 어찌 사람 힘들게 하나

小鬼本匪仁(소귀본비인)

학질 귀신 본래부터 어질지 않아
勞形已云久(노형이운구)

고달픈 몸 벌써부터 오래되어서
脩短聽大鈞(수단청대균)

길고 짦음 하늘에게 달려있으니
侜張汝詎幾(주장여거기)

기만해도 너를 어찌 몇 번 하겠나
去去莫逡巡(거거막준순)

가는 것을 망설이지 말아주세요

 

학질(瘧疾) 학질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으로, 매년 수 억의 사람이 감염되고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질병이다. 주로 열대 지방에서 발병하는데, 추위와 더위가 하루 건너 한 번 발하는 것을 해(), 매일 한 번 발하는 것을 ()이라 하며, 처음 시작할 때는 춥고 떨리면서 턱이 떨리고 허리가 아프며, 춥던 것이 멎으면 열이 나면서 머리가 몹시 아프고 갈증이 나서 찬물만 마시게 된다. 동주는 학질에 걸려 투병한 내용을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영기와 위기가 구속되어 막혀있으니, 자신의 몸을 지켜내기가 어렵다. 영기(榮氣)는 전신을 순환하는 기로 주로 혈액을 순환시키는 기능을 하고, 위기(衛氣)는 면역을 담당하는 기로 림프(lymph)와 같은 기능을 하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영기와 위기가 다 막혀버렸으니 자신의 몸을 지켜낼 수가 없다. 앞으로 좋아질 날이 있겠지마는 좋아졌다 나빠졌다 멈추질 않는다. 고통을 참고 기다렸으니, 고통과 쓴맛을 감수해야 한다. 한기가 찾아올 때는 얼음과 눈을 옷 속에다 넣어 놓은 듯, 치아들도 덜덜 떨려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그러다가 열이 심해지면 입술이 바짝 타 들어간다. 잠깐 사이에 오한과 고열이 번갈아가며 혹독하게 이어진다. 구천 하늘을 비상하여 날아올랐다 천길 아래로 빠져드는 듯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털 뿌리와 뼈 마디 속속까지 뼈를 바르듯이 아프지 않는 곳이 없다. 골수에도 미치고 심장도 말라버릴 듯 하다. 관절 마디도 모두 다 풀어진 듯 하고, 감각기관인 일곱 구멍인 눈, , , 입 등의 기능도 마비되어 버렸다. 혼미함이 저녁까지 미치고, 열기는 새벽까지 이어진다. 나이가 드니 괴로움이 더욱 심하나 죽고싶지는 않다.

다만 끙끙 않는 사이도 정신마저 가물가물 무너져내리고 있다. 음과 양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데, 학질 귀신은 어질지 않아서 사람을 고달프게 괴롭힌다. 소귀(小鬼)는 학질 귀신을 말하는데, 당나라 현종(玄宗)이 학질에 걸렸을 때 꿈에 소귀를 만났다는 고사가 전한다. 우리 선인들은 역병은 역신(疫神), 학질은 소귀(小鬼)가 찾아와서 병이 들게 되었다고 여겼다. 생명의 길고 짦음이 하늘에 달려 있으니, 학질 귀신을 속이려해도 어려우니, 나의 몸에서 떠나가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학을 떼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 학은 학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학질에 걸려 갖은 고생을 다하고 학질이 떨어졌다는 의미로 쓰인다. 동주는 마지막 구절에서 학질 귀신에게 자신에게서 제발 떨어지기를 간청하면서 시를 마무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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