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현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변종현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16374월 평안도 영변오로 유배를 갔다가 계미년(1643) 동짓달 그믐에 아산에 도착하여 생활하다가 16474월에 해배되어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아산에서 생활하던 가운데 공진 마을 주민들과 가깝게 지냈고, 떠나기 전 공진마을에 들려 마을 주민들과 작별하였다.

공진 마을에 들리니 아이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절하였다. 배 안에서 읊어 보다過貢津村童列拜道左, 舟中口占

 

浮寄西湖歲五更(부기서호세오경)

호서지방 떠돈지가 오년 정도 되었는데
扁舟始欲過江行(편주시욕과강행)

조각배로 비로서 강을 따라 가려 하니
靈峯暮靄吟邊色(영봉모애음변색)

영인산의 저녁 노을 강변 풍광 읊조리며
蟾浦春濤夢裏聲(섬포춘도몽리성)

섬포 이는 봄파도는 꿈결처럼 들려오고
已爲兒童憐惜別(이위아동련석별)

벌써부터 아이들은 이별 땜에 울먹이고
還從鷗鷺愧渝盟(환종구로괴투맹)

갈매기를 따르자던 다짐 어김 부끄럽네
蘇翁一去黃岡後(소옹일거황강후)

소동파는 황강 땅을 한번 떠나 간 뒤에도
赤壁淸遊最有情(적벽청유최유정)

적벽강의 맑은 유람 가장 마음 두었으리

 

호서지방으로 옮겨와서 떠돌이 생활을 한 지가 오년 정도 되었는데, 이제야 유배에서 풀려 조각배를 타고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다. 조각배에서 바라 본 영인산의 저녁 노을에 물든 강변 풍경도 아름답게 보이고, 섬포에 이는 봄 파도도 꿈결처럼 들려온다. 공진마을에 들리니 아이들은 이별 때문에 울먹이고 있고, 갈매기와 더불어 살겠다던 맹서를 어긴 것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동주는 아산에서 생활하던 중 밭을 사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벼를 수확하고 난 뒤에 쓴 시를 남겨 놓기도 하면서 아산에 정착하고픈 심경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제 유배에서 풀려나자 그러한 다짐을 저버리고 아산 공진 마을을 떠나는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소동파는 황주(黃州)로 유배를 가서 두 차례 뱃놀이를 하고 그 감회를 전후(前後) 두 편의 적벽부(赤壁賦)’로 읊었다. 소동파는 황강 땅을 떠난 뒤에, 적벽강의 맑은 유람을 가장 마음에 두었는데, 동주도 동파처럼 아산에서 지냈던 유배생활을 잊지못할 것이라 하였다. 동주는 한양으로 올라간 뒤 성균관의 대사성(大司成), 도승지(都承旨)를 거쳐 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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